아직은 찬 겨울비가 내리는 3월이었다.
빅애플의 날씨는 변덕스럽거니와 더럽기 짝이 없지, 레녹스 카드리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쫄딱 젖어버린 코트 자락을 흘끗 내려다본다. 물에 빠진 생쥐같은 자신을 제외하면 젖기는 커녕 어디 하나 완벽하지 않은 곳이 없는 응접실이었다. 이곳은 언제나 레녹스를 주눅들게 만들었다. 이곳을 휘어잡은 그의 주인이 그러듯이.
그에겐 인기척이랄 것이 없었다. 레녹스가 황급히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을 때엔 이미 그가 응접실의 소파에 자리를 잡은 후였다. 어머니, - 그는 말문을 여는 그의 목소리가 떨리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이곳, 어디에?”
“...하, 할렘에. 할렘에 본부가 있습니다. 제가 직접 보고 듣고,”
“왔단 말이지. 그래. … 그래. 잘 했다.”
살다 보니, 네게도 쓸모란 것이 생기는구나. 푹 꺼질듯한 속삭임만으로도 레녹스는 환희로 온 몸을 덜덜 떨었다. 하지만 그의 환히 빛나는 얼굴 따위는 더 이상 장로의 안중에도 없었다. 그의 귀에는 벌써 환희의 송가가 울려퍼지는 듯 했다. 드디어.
드디어, 헌터의 숨통을 끊을 때가 온 것이다.
괘씸한 도둑놈들. 버러지같은 배반자들. 뱀파이어들이 헌터를 경멸하는 호칭은 실로 다양했다. 감히 우리의 비밀을 훔쳐 우리의 목을 죄는 데 사용하다니. 일족에 번진 증오는 특히, 헌터에 의해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뱀파이어를 잃은 북아메리카가 가장 강렬했다. 하여 장로는 헌터의 본부가 할렘에 있다는 정보를 들은 3월의 어느 날부터 잠이 든 적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가장 달콤한 비명을 들을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에겐 명분이 필요했다. 범죄자들의 소굴을 단 한 번에 쓸어버릴 수 있는 핑곗거리.
다행히 명분은 제 발로 나타났다. 공공연하게 차기 대선 주자로 불리는 뉴욕 시장, 네이트 아이모스가 장로와 면담을 청한 것이다. 그는 어중간한 대선 레이스의 판도를 뒤엎을 강력한 한 수를 원했다. 전국의, 어쩌면 전 세계의 뱀파이어들을 자신의 등에 업을 수 있는 한 수. 장로는 그에게 원하는 것을 속삭였다.
참으로 손쉬운 협상이었다. 장로에겐 이 탐스러운 사과와 같은 도시를 침범해 갉아먹는 벌레들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오랜 염원이 있었고, 아이모스 시장은 장로의 체스말이 되기를 자청했다. 할렘 구역 전면 재개발 계획이 발표된 건 그 다음 날 아침의 일이었다.
“아이야, 조만간 고향으로 돌아올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소식 들었습니다. 재개발이라… 할렘에 쥐새끼들이 숨어 있었군요.”
“그래.”
“레드아이를 모두 소집해.”
“뜻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장로는 짧은 통화를 끝으로, 오랜만의 단잠에 든다. 더 이상 우리의 혈통을 우롱하는 가짜들은 살아 숨쉬지 못할 것이다. 다시는 어둠 속으로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터전에서 영원히 탐욕하리라.
당신은 뱀파이어만으로 이루어진 특수부대 ‘레드아이’ 소속 부대원이거나, 자문, 혹은 스페셜리스트입니다.
우리의 혈육을, 연인을, 우군을 꾸준히 노려온 헌터의 본거지를 찾아낸 황금같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일족의 영속을 위협하는 가짜 뱀파이어를 말살하고 우리의 도시를 온전히 누릴 것입니다.